여행/축제
민둥산, 억새 제치고 '여름 돌리네' 열풍
강원 정선군에 위치한 민둥산이 가을 억새의 대명사라는 수식어를 넘어 여름 산행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발 1,118.8m의 정상 부근에 나무 한 그루 없이 탁 트인 초록빛 들판이 펼쳐지는 풍경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젊은 층의 감성을 자극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황금빛 억새가 일렁이는 가을이 제철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선명한 푸른색이 화폭처럼 펼쳐지는 여름 풍경이 민둥산의 진정한 매력으로 꼽힌다. 등산 마니아뿐만 아니라 2030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매 주말 정상을 가득 메우며 민둥산은 계절을 잊은 명소로 거듭났다.민둥산이 이름처럼 나무가 없는 벌거숭이 산이 된 배경에는 척박했던 화전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주민들은 산에 불을 놓아 경작지를 만들고 곤드레 같은 나물을 재배하며 삶을 일구었다. 1968년 화전이 금지되기 전까지 매년 반복된 화전 작업으로 인해 나무가 자랄 틈이 없었던 자리에 억새가 뿌리를 내리며 지금의 독특한 풍광이 완성되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의 흔적이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전 국민이 사랑하는 이국적인 초원으로 변모한 셈이다.

여름 민둥산의 인기를 견인하는 일등 공신은 단연 정상 부근의 '돌리네 연못'이다. 능선 한가운데가 폭격을 맞은 듯 움푹 파인 이 지형은 석회암 지반이 빗물과 지하수에 녹아내리며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의 일종이다. 마치 산 정상에 박힌 푸른 보석 같은 이 연못은 억새밭을 넘어 민둥산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특히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에는 연못에 물이 가득 차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는 건조한 가을철에는 보기 힘든 여름 산행만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지질학적 특성상 물을 머금지 못하는 석회암 지대는 과거 화전민들에게는 원망스러운 땅이었으나, 현재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돌리네 연못은 용출수가 아닌 순수하게 빗물이 고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강수량에 따라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물이 마른 돌리네는 다소 삭막한 느낌을 주지만, 수량이 풍부한 여름에는 초록 들판과 대비되는 짙은 물빛이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비경을 선사한다. 이러한 희소성 덕분에 등산객들은 기상 상황을 체크하며 물이 찬 돌리네를 보기 위해 민둥산을 찾는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민둥산의 열기는 과거 억새 축제 기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겁다. 별다른 지역 행사가 없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등산로 입구부터 정상까지 인파가 줄을 잇고 있다. SNS상에서 '여름이 가기 전 반드시 올라야 할 산'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민둥산은 관악산이나 북한산 같은 도심 명산을 제치고 가장 트렌디한 산행지로 등극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돌리네 연못을 배경으로 찍는 인증샷은 이제 등산객들 사이에서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결국 민둥산의 진가는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모두 경험해야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살랑이는 억새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준다면, 여름의 민둥산은 생동감 넘치는 초록의 에너지와 돌리네 연못의 신비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빗물이 빚어낸 자연의 화룡점정인 돌리네 연못과 끝없이 펼쳐진 초록 융단은 민둥산을 단순한 등산 코스가 아닌 하나의 거대한 자연 갤러리로 만들었다. 여름 들판의 강렬함과 연못의 고요함이 공존하는 민둥산의 여름은 가을 못지않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