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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강 대 강 충돌, 원전 타격 배후는 누구인가

 미국과 이란이 사흘 연속 대규모 무력 충돌을 이어가며 지난달 어렵게 성사된 종전 양해각서(MOU) 체제가 사실상 붕괴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이란 국영 매체는 9일 저녁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인근과 주요 해군 기지가 정체불명의 발사체로부터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미 중부사령부 역시 전날 이란 내 군사 자산 90여 곳을 정밀 타격한 영상을 공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이에 맞서 이란은 요르단과 쿠웨이트 등 인근 미군 기지를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보복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종전 MOU 제5항에 명시된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에 대한 양측의 극명한 해석 차이에 있다. 이란은 해당 조항이 자신들의 배타적 통제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해협을 지나는 상선들에 대한 검문과 통제를 강화해 왔다. 반면 미국은 이란이 안전한 항행 보장 의무를 저버리고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며 이를 명백한 협정 위반으로 규정했다. 모호한 문구로 봉합했던 갈등의 불씨가 결국 실질적인 군사 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번진 셈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적대행위 중단과 제재 완화라는 MOU의 핵심 목표들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의 이란산 원유 제재 복원은 협상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 결정적 패착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양해각서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사망 선고' 상태에 놓였다고 분석하면서도, 양측 모두 전면전으로의 복귀가 가져올 파멸적 결과를 잘 알고 있기에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무력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도 전면전 확대를 막기 위한 물밑 외교 채널은 여전히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당국은 원전 주변 타격설에 대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확전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고, 카타르와 파키스탄 등 중재국들 역시 사태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는 실무 차원의 협의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란과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정세의 또 다른 축인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 지역에서는 미약하게나마 평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중재한 합의에 따라 레바논 남부 일부 구역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레바논 정부군이 통제권을 인수하는 절차가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다. 이러한 이행 조치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러한 평화는 살얼음판과 다름없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장례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향후 협상의 향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당초 장례식 이후 핵 프로그램 폐기 등 핵심 난제들에 대한 논의가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사흘간의 공방으로 인해 모든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국제 사회는 미국과 이란이 강 대 강 대치를 멈추고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다. 중동의 긴장감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가운데, 양측이 전면전의 문턱에서 어떤 외교적 결단을 내릴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은과 도자기의 충돌…운암산 가마터의 비극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가 밀집해 있었으며, 이는 곧 일본군에게 거부할 수 없는 표적이 되었다. 흔히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국제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던 '은'과 '도자기'를 둘러싼 거대한 충돌이 자리 잡고 있었다.당시 동북아시아의 경제 질서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조공 무역 체제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하듯 캐낸 은은 유럽을 거쳐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사치품이었고,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던 명나라는 전 세계의 은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역할을 했다. 세금조차 은으로 납부하게 했던 명나라의 경제 체제는 주변국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명 중심의 독점적 무역 구도에 균열을 낸 것은 일본의 비약적인 은 생산량 증가였다. 1526년 일본 시네마현의 이와미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일본은 단숨에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은 강국으로 부상했다. 연간 20만kg에 달하는 은을 손에 쥔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중심의 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통해 직접 교역을 통제하자, 일본은 무역로를 확보하고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다.이 거대한 경제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 바로 도자기다. 당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오늘날의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이었다. 일본은 은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품질의 도자기로 바꿀 기술력이 부족했다. 반면 조선은 고흥 운암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분청사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수많은 도공을 납치하고 가마터를 파괴한 것은 경제적 부를 창출할 '기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었다.고흥 운암산 가마터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산증인이다. 왜군은 남해안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운암산의 분청사기 생산 기반을 철저히 유린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던 분청사기는 조선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역동적인 미감을 갖추고 있어 일본 다도인들 사이에서 보물 대접을 받았다. 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은과 도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때, 고흥의 가마터가 왜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되고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오늘날 운암산 가마터에 대한 재조명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준다. 단순한 침략과 방어의 역사를 넘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국제 통화인 은을 매개로 충돌했던 거대한 경제사적 사건으로 전쟁을 재해석하게 한다. 고흥군은 현재 산재한 가마터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잊혔던 분청사기의 고향 운암산은 이제 400여 년 전 국제 정세의 파고를 증언하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