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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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지뢰 폭발 엿새째…“원점 접근 못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사고 현장에 군과 유엔군사령부가 사고 엿새 만에 진입해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까지는 접근하지 못하면서 추가 조사가 필요하게 됐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우리 군과 유엔사는 27일 DMZ 내 기동로를 넓히고 지뢰 정밀탐색을 진행하며 사고 지점 인근까지 접근했다. 조사팀은 이날 오전 9시께부터 일몰까지 지뢰탐지기 등을 활용해 기존 기동로를 확인하고 새로운 접근로를 확보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실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조사 지역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지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인 데다 작전 인원들의 피로도까지 고려해 안전을 우선하기로 하면서 이날 조사를 종료했다.

 

합참은 향후 다시 현장에 진입해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남아 있는 지뢰 파편 등 잔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날 폭발 추정 지점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관련 증거 수집도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잔해 분석은 폭발물이 북한군 지뢰인지 우리 군이 설치한 지뢰인지 등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날 현장에는 우리 군 작전병력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 조사기관 인원 등 40여명이 투입됐다. 사고가 발생했던 지난 21일 수색로 개척 작전에 참여했던 간부 일부도 조사팀에 포함됐다.

 

군과 유엔사는 전날인 26일에도 20여명을 DMZ에 투입해 현장조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기존 수색로까지 진입해 기동로를 확보하고 작전환경을 점검했으며, 이날은 새롭게 개척한 경로를 통해 폭발 추정 지점에 접근을 시도했다.

 

사고는 지난 21일 오전 10시50분께 경기 파주시 육군 25사단 관할 지역에서 발생했다. 군이 군사분계선(MDL) 인근 DMZ에서 수색로를 새로 개척하던 중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이 두 차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수색대대장 등 2명이 중상을 입었고 1명이 경상을 입었다.

 

당시 병력은 북한이 MDL 이남에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유엔사의 현장조사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수색로를 개척하고 있었다. 사고 이후 군은 현장 접근에 앞서 안전한 기동로를 확보하는 작업부터 진행해왔다.

 


현장조사가 늦어진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야권에서는 조사 지연으로 증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했다. 반면 군은 사고 지점이 MDL에 가깝고 수풀이 우거진 데다 기존 수색로가 없는 위험 지역이어서 안전을 확보한 뒤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앞으로 진행될 추가 조사는 폭발 원인과 지뢰 종류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합참은 우리 군과 유엔사가 추가 현장조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확인된 사실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