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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암살자들’ 직격…“배우들이 똥 밟아”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정치권의 고발로 번진 가운데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작품의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제작진은 영화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이다. 

 

진 교수는 29일 페이스북에 ‘암살자(들)’을 언급하며 영화 시나리오를 두고 “번데기 아이큐 수준의 허접한 음모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주요 배우들을 섭외한 감독의 능력을 비꼬며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두고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암살자(들)’은 지난 23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이 출연했으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숨진 사건을 소재로 당시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문과 가능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논란은 영화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의 경과만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작품에서는 당시 총격 상황과 수사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다룬다. 특히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 등이 등장하면서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문제 삼은 고발까지 나왔다.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29일 서울경찰청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와 허진호 감독, 권기준·이지민 작가 등을 고발했다.

 

이 전 의원은 영화 제목인 ‘암살자(들)’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제목이 문세광 외에 또 다른 인물이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방탄 연설대 교체 과정과 총격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 여러 설정 역시 특정한 배후를 떠올리게 한다고 봤다.

 

특히 극 중 중앙정보부 등 당시 권력기관의 개입 가능성과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사건에 관여하거나 배후에 있었던 것처럼 관객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며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했다. 이는 고발인이 제기한 주장으로,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제작진은 이 같은 주장에 반박했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28일 공식 입장문에서 영화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관련 기록과 자료를 살펴본 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했지만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거나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한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제작한 영화도 아니라며 작품을 창작물로 봐달라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확산한 중국 자본 유입설에 대해서도 제작사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29일 공식 입장을 통해 영화의 제작과 투자 과정에 중국 자본이 들어온 사실이 없으며 국내 제작진과 창작자들이 국내 자본으로 독립적으로 기획·제작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흥행 성적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던 ‘암살자(들)’은 28일 하루 관객 6만7406명을 기록하며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이어 2위로 내려왔다. 누적 관객은 163만3621명이다.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범위, 정치적 해석 문제로 확대되면서 향후 논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 찍다 걷다 쉬다, 문경새재 하루는 너무 짧다

나란히 남아 있다. 붉고 노랗게 물든 숲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 너머에 가려졌던 길의 역할이 하나씩 드러난다.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던 주요 통로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와 물건을 나르는 상인, 임지로 향하는 관리들이 이곳을 넘었다. 여행객에게는 여유로운 산책길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계와 출세, 공무가 걸린 이동로였다. 같은 흙길 위에 서로 다른 사연이 포개진 셈이다.이 길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설은 세 관문이다. 아래쪽부터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 자리하며 산세를 이용한 방어선을 형성한다. 지금은 숲과 어우러진 사진 촬영 명소로 눈길을 끌지만, 처음부터 경관을 위해 세운 건축물은 아니다. 관문과 성벽의 배치에는 외적의 이동을 막으려 했던 군사적 판단이 담겨 있다.방어시설 정비의 중요한 계기는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문경새재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됐고, 1594년 제2관문 일대에 방어시설이 들어섰다. 이후 숙종 대에 제1·제3관문과 성벽이 더해지며 방어체계가 갖춰졌다. 세 관문을 차례로 살펴보는 일은 전란 이후 국가가 어떤 대비책을 마련했는지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관문 사이에서는 전쟁과는 다른 역사를 만난다.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교귀정은 신임 경상도 관찰사와 이임 관찰사가 업무를 인계하던 장소다. 조령원 터는 공무로 길을 나선 이들의 숙박을 지원했던 시설의 흔적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교통·숙박 기반처럼, 옛길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이 필요했다.문학과 생활문화 역시 새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길을 지나간 문인들의 시에는 산세를 바라보는 감흥과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전해지는 문경새재아리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들려준다. 성문과 정자가 국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시와 노래는 그 사이를 걸었던 개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여행객이 이러한 흔적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데는 흙길의 역할도 크다. 약 6.5㎞ 구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며 걷게 한다. 관문 앞에서는 성벽을 올려다보고, 유적 주변에서는 안내문을 읽으며 걸음을 늦출 만하다. 전 구간을 완주하기보다는 체력과 일정에 맞춰 돌아올 지점을 정하는 편이 좋다.가을의 문경새재를 즐기는 방법은 단풍 명소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 사이에 왜 관문이 들어섰는지, 관리와 상인들은 어디에서 쉬었는지 생각하며 걸으면 익숙한 풍경이 달라진다. 문경새재의 매력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